‘쌀누룩’이 아닌 ‘쌀코지’의 모든 것

 


잘못 불리고 있는 이름, ‘쌀누룩’

최근 건강 발효식품이 인기를 끌면서 시중에는 '쌀누룩소금', '쌀누룩간장' 같은 이름의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전통 발효제인 누룩을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제품들의 주원료는 대부분 ‘쌀코지(Kome-koji)’, 즉 찐 쌀에 황국균(Aspergillus oryzae)을 접종해 발효시킨 발효 스타터입니다.

‘누룩’이라는 말은 익숙하고 전통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사용되고 있지만, 학술적, 발효과학적 기준으로 보면 이는 명백한 오용입니다. 쌀코지와 누룩은 발효 방식부터 미생물 구성까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쌀코지란 무엇인가?

쌀코지(Kome-koji, 米麹)는
① 쪄낸 쌀에
② 황국균(Aspergillus oryzae)이라는 곰팡이를
③ 일정한 온도·습도 환경에서 배양시켜
전분과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아밀라아제, 프로테아제 등)를 풍부하게 가진 상태로 만든 발효 스타터입니다.

즉, 살아 있는 곰팡이 미생물과 그 미생물이 분비한 효소의 복합체입니다. 이 효소들이 쌀 전분을 당으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바꾸는 것이 발효의 핵심입니다.


쌀코지의 성질 – 미생물이면서 효소의 덩어리

쌀코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다음 두 가지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1. 살아 있는 미생물

  • 쌀코지는 황국균이 자라고 있는 ‘생균 상태’의 발효재입니다.

  • 이 균은 자기 몸 밖으로 효소를 분비하여 쌀의 영양분을 발효 가능한 형태로 바꿉니다.

  • 따라서 사케, 된장, 간장, 아마자케 등에서는 이 균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2. 효소가 풍부한 식재료

  • 시간이 지나거나 열을 가하면 미생물은 죽지만,

  • 그동안 생성된 효소는 남아서 일정 기간 동안 작용합니다.

  • 그래서 건조된 쌀코지를 활용한 제품들은 살아있는 균이 없더라도 효소 작용으로 맛과 감칠맛이 살아 있습니다.


왜 ‘쌀누룩’은 잘못된 표현일까?

‘누룩’은 한국 전통 발효 방식에서

  • 밀, 보리, 콩 등 다양한 곡물에 자연 상태의 야생균을 번식시킨 발효제입니다.

  • 여러 종의 곰팡이, 효모, 젖산균이 혼합된 복합 미생물군이며

  • 막걸리, 된장, 간장 등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쌀코지는 쌀에 ‘황국균 한 종만을 배양한 순수 발효 스타터’입니다.

  • 일본 발효식품에서 기원했으며,

  • 균의 종류부터 발효 방식까지 전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친숙하다는 이유로 쌀코지를 ‘쌀누룩’이라 부르는 건, 지적 정직성의 문제이자, 발효문화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쌀코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

  1. 정확한 미생물 정보가 안전한 발효로 이어집니다.

    – 황국균은 안전성이 검증된 곰팡이지만, 누룩의 야생균은 다양하고 통제가 어렵습니다.

  2. 발효의 원리를 이해하면 제품 선택이 바뀝니다.

    – 단지 '발효'라는 단어에 끌릴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균으로 발효되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3. 우리 발효문화와 일본식 발효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 누룩과 코지는 각기 다른 문화와 기후에서 발전한 발효기술입니다. 뿌리가 다르면 쓰임도 다릅니다.


언어를 바로잡는 것이 문화를 살리는 일

“쌀누룩”이라는 말은 친근하지만, 사실을 흐립니다.
쌀코지는 쌀코지, 누룩은 누룩입니다.
두 용어를 혼용하는 건 발효문화를 축소시키고, 소비자의 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정확한 이름은 정확한 문화를 낳습니다.
발효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이지만, 그 시작은 ‘정확한 언어’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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